title 롯데월드 한 바퀴 : 성전에서 유사-자연사 박물관까지
type 에세이
year 최초작성 2021, 개정 2025
author 이윤석
publish 매거진 GEEP
type 에세이
year 최초작성 2021, 개정 2025
author 이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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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한 바퀴 : 성전에서부터 유사-자연사 박물관까지
입구
신천역1을 지나 아파트 단지를 몇 개 넘어서면 갑자기 인도가 운동장처럼 넓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치 어디론가 순간이동 된 것처럼 롯데월드 정문이 등장한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서 뜬금없다. 그 입구는 유럽 어디엔가 있을 법한 성당들을 적절히 섞어놓은 모양새다. 아치형 천장 아래 장미창 대신 커다란 원형 시계가 박혀 있고, 문설주에는 울상을 지은 예수의 열두 제자 대신 로티와 로리가 조각이 되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은색과 상아색의 반사형 타일들이 패턴을 이루며 빈 곳을 적절히 메꾸고 있다. 크기는 건물 높이만 하다.
롯데월드가 개장했던 30년 전을 상상해 본다. 올림픽의 열기로 격양된 도시에 새로운 성취가 열렸다. 정문 앞에는 관광버스에서 내린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꿈속에서 보았던 신비한 세계를 상상하며 입장을 기다린다. 롯데월드는 성전이었다.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닌, ‘우리는 이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높이 솟은 입구와 텅 빈 광장은 거대한 제단처럼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았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국가적 성취를 목도했다. 기술력, 선진성, 세계화로 나아가는 미래.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롯데월드는 서울 한복판에서 하나의 거대한 입구가 되었다.
돔과 망루
입구를 지나 매표소를 거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시야를 압도하는 거대한 유리 돔이 펼쳐진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다. 90년대생들에게는 더더욱 낯익다. 학교에서는 미래도시를 그려보라는 숙제를 내거나 미술 경진대회를 열어댔기 때문이다. 도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반구형 유리 돔 아래 집과 나무를 그렸다. 롯데월드는 그 유리 돔으로 1만 평의 실내를 덮어 바깥과 분리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돔을 통해 쏟아지는 빛은 천창을 통과해 떨어지는 신전의 빛과 같다. 우리는 그 빛을 마주하며 눈앞에 펼쳐진 환상을 납득하게 된다. 올림픽이 가져온 기술적 성취가 건축을 통해 시각화된 것이다. 유리와 돔은 선진성과 미래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고, 한국의 고층 건물 로비와 아케이드에서도 증식하기 시작했다. 롯데월드 안에도 이런 유리 천장과 돔이 10개나 있다.
한참 천장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본다. 6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테마로 꾸며진 각국의 건축물들은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롯데월드 속 풍경은 구축과 치장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현실의 단서들을 꼼꼼히 지운다. 스페인 거리의 지붕에는 주홍빛 기와가 한땀 한땀 쌓여있고, 네덜란드 거리의 풍차는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영국 거리 성벽의 석재 벽돌과 목재 프레임들은 지나치게 선명하다. 그 중앙에는 롯데월드에서 가장 상징적인 풍경을 만드는 아이스링크가 있다. 천장이 높기 때문에 아이스링크의 주변에는 대형 공조2 타워가 세워져 있는데, 유심히 살펴봐도 에어컨은 보이지 않는다. 6미터 높이의 공조 타워들이 서양식 망루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망루들은 롯데월드의 가장 해상도 높은 환상이다. 창문으로 바람이 나온다.
모노레일, 열기구 그리고 로티와 로리의 조감도적 시점
롯데월드를 조감할 수 있는 세 개의 시점이 있다. 모노레일, 열기구, 롯데호텔3.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곳들은 단순한 전망대가 아니다. 조감도는 욕망을 시각화하는 도구다.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공간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시선이다. 롯데월드는 그 시선을 놀이기구로 구현했다. 사람들은 모노레일이나 열기구를 타고, 호텔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이 세계를 조감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롯데월드는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니다. 그곳은 완성된 이상적 세계이며,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내가 롯데월드를 설계한 사람이었다면, 이곳에 다시 들를 때마다 가장 먼저 열기구에 올랐을 것이다. 게임 ‘심시티(Sim City)’에서 내가 만든 도시를 내려다보듯이. 그런데 그것은 놀이기구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사람들은 즐거워하는지, 지붕 위에 쓰레기는 없는지 살피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만든 세계를 바라보며 흐뭇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미래≠환상
롯데월드는 낡았지만, 그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설 때마다 어딘가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롯데월드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미래라고 믿어왔던 욕망과 환상의 이미지를 멈춰 세웠을 뿐이다. 롯데월드는 욕망의 세계를 건축적으로 구현했다. 그것은 도시가 꿈꾸던 선진성, 기술력, 세계화의 이상을 집대성한 공간이었다. 욕망은 현실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욕망이 아니다. 롯데월드는 그 변화를 거부한 채 그 순간을 멈춰 세웠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스노우볼 속 ‘고정된 미래’를 만들어냈고, 우리는 여전히 그 미래를 바라보며 기대한다.
롯데월드는 유사-자연사 박물관이다. 그러나 그곳의 전시물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한때 미래의 운송수단으로 각광받던 모노레일은 여전히 레일 위를 달리고 있으며, ‘신밧드의 모험’은 30년 동안 같은 경로를 순항 중이다. 과거의 미래는 현재가 되었지만, 롯데월드는 살아있는 환상으로 남아있다. 우리의 미래는 한때 롯데월드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1 지금은 잠실새내역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 공조는 건물 내부의 온도, 습도, 공기 순환을 조절하는 설비 시스템을 뜻한다. 대형 건축물에서는 공조 타워나 덕트를 통해 공기를 공급, 조절한다.
3 롯데호텔에는 롯데월드 어드벤쳐 내부로 창이 나 있는 객실들이 있다. 로티, 로리 캐릭터로 꾸며져 있던 이 객실들은 개보수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2021년 기준)
입구
신천역1을 지나 아파트 단지를 몇 개 넘어서면 갑자기 인도가 운동장처럼 넓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치 어디론가 순간이동 된 것처럼 롯데월드 정문이 등장한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서 뜬금없다. 그 입구는 유럽 어디엔가 있을 법한 성당들을 적절히 섞어놓은 모양새다. 아치형 천장 아래 장미창 대신 커다란 원형 시계가 박혀 있고, 문설주에는 울상을 지은 예수의 열두 제자 대신 로티와 로리가 조각이 되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은색과 상아색의 반사형 타일들이 패턴을 이루며 빈 곳을 적절히 메꾸고 있다. 크기는 건물 높이만 하다.
롯데월드가 개장했던 30년 전을 상상해 본다. 올림픽의 열기로 격양된 도시에 새로운 성취가 열렸다. 정문 앞에는 관광버스에서 내린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꿈속에서 보았던 신비한 세계를 상상하며 입장을 기다린다. 롯데월드는 성전이었다.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닌, ‘우리는 이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높이 솟은 입구와 텅 빈 광장은 거대한 제단처럼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았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국가적 성취를 목도했다. 기술력, 선진성, 세계화로 나아가는 미래.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롯데월드는 서울 한복판에서 하나의 거대한 입구가 되었다.
돔과 망루
입구를 지나 매표소를 거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시야를 압도하는 거대한 유리 돔이 펼쳐진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다. 90년대생들에게는 더더욱 낯익다. 학교에서는 미래도시를 그려보라는 숙제를 내거나 미술 경진대회를 열어댔기 때문이다. 도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반구형 유리 돔 아래 집과 나무를 그렸다. 롯데월드는 그 유리 돔으로 1만 평의 실내를 덮어 바깥과 분리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돔을 통해 쏟아지는 빛은 천창을 통과해 떨어지는 신전의 빛과 같다. 우리는 그 빛을 마주하며 눈앞에 펼쳐진 환상을 납득하게 된다. 올림픽이 가져온 기술적 성취가 건축을 통해 시각화된 것이다. 유리와 돔은 선진성과 미래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고, 한국의 고층 건물 로비와 아케이드에서도 증식하기 시작했다. 롯데월드 안에도 이런 유리 천장과 돔이 10개나 있다.
한참 천장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본다. 6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테마로 꾸며진 각국의 건축물들은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롯데월드 속 풍경은 구축과 치장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현실의 단서들을 꼼꼼히 지운다. 스페인 거리의 지붕에는 주홍빛 기와가 한땀 한땀 쌓여있고, 네덜란드 거리의 풍차는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영국 거리 성벽의 석재 벽돌과 목재 프레임들은 지나치게 선명하다. 그 중앙에는 롯데월드에서 가장 상징적인 풍경을 만드는 아이스링크가 있다. 천장이 높기 때문에 아이스링크의 주변에는 대형 공조2 타워가 세워져 있는데, 유심히 살펴봐도 에어컨은 보이지 않는다. 6미터 높이의 공조 타워들이 서양식 망루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망루들은 롯데월드의 가장 해상도 높은 환상이다. 창문으로 바람이 나온다.
모노레일, 열기구 그리고 로티와 로리의 조감도적 시점
롯데월드를 조감할 수 있는 세 개의 시점이 있다. 모노레일, 열기구, 롯데호텔3.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곳들은 단순한 전망대가 아니다. 조감도는 욕망을 시각화하는 도구다.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공간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시선이다. 롯데월드는 그 시선을 놀이기구로 구현했다. 사람들은 모노레일이나 열기구를 타고, 호텔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이 세계를 조감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롯데월드는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니다. 그곳은 완성된 이상적 세계이며,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내가 롯데월드를 설계한 사람이었다면, 이곳에 다시 들를 때마다 가장 먼저 열기구에 올랐을 것이다. 게임 ‘심시티(Sim City)’에서 내가 만든 도시를 내려다보듯이. 그런데 그것은 놀이기구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사람들은 즐거워하는지, 지붕 위에 쓰레기는 없는지 살피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만든 세계를 바라보며 흐뭇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미래≠환상
롯데월드는 낡았지만, 그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설 때마다 어딘가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롯데월드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미래라고 믿어왔던 욕망과 환상의 이미지를 멈춰 세웠을 뿐이다. 롯데월드는 욕망의 세계를 건축적으로 구현했다. 그것은 도시가 꿈꾸던 선진성, 기술력, 세계화의 이상을 집대성한 공간이었다. 욕망은 현실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욕망이 아니다. 롯데월드는 그 변화를 거부한 채 그 순간을 멈춰 세웠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스노우볼 속 ‘고정된 미래’를 만들어냈고, 우리는 여전히 그 미래를 바라보며 기대한다.
롯데월드는 유사-자연사 박물관이다. 그러나 그곳의 전시물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한때 미래의 운송수단으로 각광받던 모노레일은 여전히 레일 위를 달리고 있으며, ‘신밧드의 모험’은 30년 동안 같은 경로를 순항 중이다. 과거의 미래는 현재가 되었지만, 롯데월드는 살아있는 환상으로 남아있다. 우리의 미래는 한때 롯데월드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1 지금은 잠실새내역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 공조는 건물 내부의 온도, 습도, 공기 순환을 조절하는 설비 시스템을 뜻한다. 대형 건축물에서는 공조 타워나 덕트를 통해 공기를 공급, 조절한다.
3 롯데호텔에는 롯데월드 어드벤쳐 내부로 창이 나 있는 객실들이 있다. 로티, 로리 캐릭터로 꾸며져 있던 이 객실들은 개보수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2021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