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흐르는 주방  
type 인테리어
size 135.53
location 서울 길음동
year 2024
team 이윤석, 최규순
status 완공

photography 이윤석
construction 이윤석, 최규순

설계를 시작할 때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경험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외침으로 출발한다. 새롭다는 표현이 일상과 무관한 생경한 경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을 개보수하는 일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경우의 수가 많지 않다. 아파트는 한국인의 삶을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진 프레임이기에, 거실을 중심으로 하는 평면도의 모든 센티미터에는 의도가 담겨있다. 콘크리트 벽이 만든 공간의 규칙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아주 작은 부분들을 건축적으로 편집해, 집의 중심을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주방이 거실에 딸려(혹은 달려)있었다면, 집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분주하며 생명력 넘치는 주방이라는 공간을 집의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일상의 수많은 행위가 주방 식탁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해, 식탁을 중심으로 널찍한 공간을 확보했다. 아일랜드형 주방 카운터를 과감히 없애 여지가 많은 주방의 여백을 만들고, 뒷베란다에 보조 주방을 구성했다. 주방과 뒷베란다를 분리하던 창호들은 떼어 내버리고, 특별 제작해 만든 미닫이문들을 달아 부드럽게 빨려들어갈 수 있는 경계를 만들었다.


주방의 천장 높이는 2100으로 낮게 설정했다. 낮은 천장으로 주방을 강조함과 동시에 공간적 압축(compression)을 통해 안락함을 주었다. 대비를 통해 거실 천장은 오히려 더 높게 느껴진다. (천장이 높다고 항상 좋은것이 아니다!) 동그랗게 튀어나온 주방 벽은 거실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집에 들어왔을 때 가장 처음 보이는 데다가, 한번 쓰다듬어 보고 싶게 생긴 이 벽은 집의 특별한 구석이다. 마감 재료는 화이트 오크 무늬목 패널을 이다메 형식으로 조합해 특이하면서도 따뜻한 패턴을 만들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벽이다. 큰 돈을 들여 만든 공간인데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섭섭하므로.

무난한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새로운 제안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빛은 꼭 필요한 곳에만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색깔은 과감한 것을 골랐다. 수납 가구는 너무 모든 것을 가리려고 애쓰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개성있으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자의 개성이 묻어날 수 있는 집을 상상했다. 새로운 공간의 질서가 일상 속 다른 감각을 깨워주기를 기대하고 있다.